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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아무튼 인간은 사랑스러워

seungbeomdo 2024. 11. 26. 14:50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양자역학에서 보면 나도 무수히 많은 확률적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인공지능을 완전하게 구현하는 날이 오면 고유한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주인공의 딸은 모든 도덕규칙을 잃어버리고 순수한 혼돈으로 우주를 하염없이 부유하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가 머지 않아 겪게 될 정체성의 위기를 은유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은 단지 인간의 특정 기능을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 그 자체의 상위호환 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복잡한 계산은 잘하지만 우리의 창의력은 따라하지 못할거야 라고 믿었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런 안일함도 무너졌다.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괜한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술 발전에 불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특별하길 바란다는 자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짚으려는 건, 그런 자의식에 꼭 어떤 근거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지금까지 휴머니즘은 우리 인간이 특별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찾아내겠다고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우리가 자연세계에 대해 잘 알면 잘 알수록 그런 이유따위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니까 우울해진다.

영화가 주장하는 휴머니즘은 그와 정확히 반대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해명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명제라고 비판 받겠지만, 정확하게는, 해명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우주의 입장에서까지 우리 모습을 객관화하며 괴로울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휴머니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휴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다정하게 대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런 근거 없는 뻔뻔한 휴머니즘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난 챗지피티보다 아는 것도 없고 그림도 못 그리지만 아무튼 난 사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