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계기로 성별 임금 격차 문제에 관해 생각할 일이 생겨서 예전에 어딘가에 썼던 걸 다시 가져와봤다.
남성과 여성의 연령-임금 그래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1) 남성이 거의 모든 연령에서 여성보다 높은 임금을 얻는다는 것과 2) 남성의 경우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속도가 여성의 그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임금이 노동자의 한계생산과 같으리라고 예측한다. 생산성은 인적자본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인적자본 투자량의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물론 나는 남성과 여성 간 선천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없고,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인적자본 투자량의 차이에서만 생산성 차이가 나타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간 선천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없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것은 경제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훨씬 높은 차원의 주제이다. 근데 나는 이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다)
인적자본 투자는 투자의 기대수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이루어진다. 인적자본 투자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미래 기간 동안 더 높은 임금을 얻게 된다. 이때 임금의 증가분이 기대수익이다. 이 기대수익이 투자의 비용보다 높을 때 개인은 인적자본에 투자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투자 비용이 큰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때 남성과 여성의 인적자본 투자량의 차이는 투자의 기대수익이 다르다는 데 기인한다.
(남성과 여성의 인적자본 투자의 비용에 차이가 없다는 가정은 남성과 여성이 선천적으로 생산성 차이가 없다는 가정과 일관성을 갖는다. 학습능력이 높아서 동일한 크기의 인적자본 습득을 위한 투자 비용이 낮다면 일반적으로 생산성도 더 높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인적자본 기대수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인적자본 투자로 상승된 임금을 얼마나 오랫동안 받을 수 있는가이다. 여성은 출산, 양육, 가사노동 등으로 경력단절의 문제를 겪고 이후 기존 일자리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높다. a) 이것이 여성 본인이 혹은 여성의 주변 환경이 여성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량을 줄이도록 하는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시집 갈 건데 여자가 대학 가서 뭐하냐는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요즘에는 그런 사례 별로 없지만).
한편으로는 b) 사용자 입장에서 여성 근로자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회피함으로써 여성의 인적자본 성장이 가로막힐 수 있다. 여기서 투자란 대학원 진학 지원이나 연수 등의 일반적인 투자뿐만 아니라 중요 프로젝트를 맡겨 기업 내 핵심 인사로 키워낸다든지 하는 경우도 넓은 의미에서 투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이 경우 투자의 기회비용은 이미 능력이 검증된 노동자에게 프로젝트를 맡겼을 때의 확실한 수입이 된다). 여성의 출산, 양육, 가사노동에 대한 편파적인 부담은 여성 근로자가 일정 시기 이후 기업을 떠나게 되는 사례들을 축적해왔다.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 여성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의 기대수익을 낮추게 된다.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한 예상이 여성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를 줄여 더 낮은 임금을, 사용자에 의한 지속적 투자를 줄여 연령이 증가함에 따른 더 낮은 임금 성장률을 야기할 수 있다. 요즘에는 여성 본인이나 그 가족이 잠재적 근로자인 여성에게 투자를 꺼리는 경우는 드물고(여성의 높은 대학진학률 등을 고려하면) 사용자에 의한 지속적 투자의 배제가 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사용자의 결정은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즉 우리가 분노할 만한 성차별이나 비윤리적 차별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러 보수우파 논객들의 주장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다. 그들은 학력과 직종, 지역, 부모 소득 등 거의 모든 요인을 통제하고서도 남는 임금 격차에 대하여 측정되지 않아 통제되지 않는 요인들이 임금 격차를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직장 생활에서 초과 근무를 수락하는 경우가 남성에 비해 적다거나 승진 과정에서 여성은 언젠가 회사를 떠날 사람임을 고려한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그러한 요인에 의한 차별을 이윤극대화를 위한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라고 본다. 통계적 차별이라는 개념으로도 지칭되는데, 여성에 대한 고용 및 인적자본 투자의 기대수익이 낮다는 것이 어떤 축적된 통계에 근거한 추론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점에 있어서 기업이 '합리적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적 자원을 기업 내에 배분하고, 물적 자원을 인적자본화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 축적된 여성 고용의 사례는 기업에게 분명 리스크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가져야 할 의문은 기업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합리적이도록 하는 배경이 성차별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큰 양육 및 가사의 부담을 져야만 하고, 가정의 유지를 위해 남성이 아닌 꼭 여성들이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분명 성차별이다. 문화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여성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 유인을 감소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영역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만든다.
(남녀 임금격차 논쟁에서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 합리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개별 경제 주체'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시점'에서 남성 근로자가 더 생산적임을 주장한다. 반면 사회적 가치판단을 중시하는 이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일반적으로'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은 성차별이며, 남녀가 평등하게 고용될 때 '사회적으로' 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해왔다. 내 생각에는 양자의 입장 모두 더 큰 차원에서 통합 될 수 있는 것 같다)
인적자본 투자의 편파적 배분은 남성 집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남성 노동자들에게 투자 과잉을 야기해 비효율성을 발생시킨다. 여성의 증가하는 경제활동 참여 및 기업 내 고위직 진출이 여성의 생산성에 대한 통계적 '편견'을 깨뜨릴 수 있다면 투자의 효율화가 이루어진다.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임에도 성별 프리미엄을 누려왔던 노동자들을, 상대적으로 생산적인 여성 노동자로 대체함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도 사회적으로도 더욱 효율적인 결과를 얻는 것이다.
가령 10명의 남성과 여성 근로자가 존재하고 각 성별그룹 내에서 5명은 생산적, 5명은 비생산적이라고 하자. 이때 기업이 10명의 근로자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면 생산적인 남성 근로자와 여성 근로자를 5명씩 골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통계적 차별에 의해 남성 근로자 7명(5명은 생산적이나 2명은 비생산적)과 여성 근로자 3명을 선택해왔다는 것이다. 남성 근로자 중 비생산적인 2명을 채택받지 못한 여성 근로자 중 생산적인 2명으로 대체한다면 효율성이 증대하게 된다(성차별이 없더라도 여전히 시장주의가 잔인하긴 하다).
이렇게 본다면, 제도적 측면에서 여성 고용 할당제라든지 문화적 정치적 측면에서 여성 운동의 활성화라든지 모두 전통적 사례에 대한 반례를 축적하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물론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만 여성 운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의사결정권만을 존중하면 기업의 단기적 효율성은 극대화되더라도 장기적 효율성 및 사회적 효율성의 달성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성들이 남성의 임금 수준을 추격해가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 부합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및 성평등 의식 제고에 따라 여성들이 기업 내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 받고 생산성을 인정 받아 반례들이 축적되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 역시 남성들만큼이나 생산적일 수 있고 다만 지금까지 문화적 차별(에서 기인한 통계적 차별)로 인해 기업 내 인적자본 투자에서 배제돼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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