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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hof et al.(2015) 불평등은 금융위기를 초래하는가?

라잔 가설(Rajan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불평등이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다소 검증하기 어려운 가설이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이 자신의 책 Fault Line에서 제시한 주장에서 유래했다. 그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경제에서, 저소득층은 인적자본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저소득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재정정책을 사용하거나 구조적인 문제 해결로 접근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대신 완화적 금융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증가시키며 이것이 금융위기의 배경을 형성한다. ​"Growing income inequality in the United ..

거시경제학 2024.11.27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아무튼 인간은 사랑스러워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양자역학에서 보면 나도 무수히 많은 확률적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인공지능을 완전하게 구현하는 날이 오면 고유한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주인공의 딸은 모든 도덕규칙을 잃어버리고 순수한 혼돈으로 우주를 하염없이 부유하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가 머지 않아 겪게 될 정체성의 위기를 은유하고 있는 셈이다.과학기술은 단지 인간의 특정 기능을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 그 자체의 상위호환 버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복잡한 계산은 잘하지만 우리의 창의력은 따라하지 못할거야 라고 믿었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런 안일함도 무너졌다.우리는 인간이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괜한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술 발전에 불안함..

이표율, 현물이자율, 만기수익률, 액면수익률

채권은 너무 어렵고 헷갈린다. 채권론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가장 짜증나는 것은 채권에는 너무 많은 수익률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만 조금씩 다르고 다 같은 것을 의미하는 수익률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접근하게 되는데 진도를 나가다보면 자꾸 꼬이고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개념을 하나하나 천천히 이해하면서 나가면 어려울 것은 없다. 근데 입문자의 관점에서 헷갈리는 점들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며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나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해서 내 공부도 할겸 이 짜증나는 수익률 개념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채권의 정의먼저 채권을 정의하자. 내가 A에게 돈을 빌려주면 돈을 언제까지 어떻게 갚겠다는 권리를 약정한 증서를 받아놓아야 한다. 이 권리 또는 증..

남녀 임금 격차의 문제: 성차별과 통계적 차별 사이

우연한 계기로 성별 임금 격차 문제에 관해 생각할 일이 생겨서 예전에 어딘가에 썼던 걸 다시 가져와봤다.남성과 여성의 연령-임금 그래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1) 남성이 거의 모든 연령에서 여성보다 높은 임금을 얻는다는 것과 2) 남성의 경우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속도가 여성의 그것보다 크다는 것이다.노동경제학에서는 임금이 노동자의 한계생산과 같으리라고 예측한다. 생산성은 인적자본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인적자본 투자량의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물론 나는 남성과 여성 간 선천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없고,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인적자본 투자량의 차이에서만 생산성 차이가 나타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간 선천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없..

인과추론 방법론들에 대한 생각: 대체 뭐가 인과관계인지

이게 상관관계냐 아니면 인과관계냐 하는 것은 통계학이나 여러 실증적 사회과학에서 자주 제기되는 상투적인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그렇다. 도대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엄밀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엄밀한 정의'를 실증 연구에 적용하기 위한 '실행 가능한 정의'는 무엇인가? 다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 것 같다(내 피셜). 첫째,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포함한다.즉 두 변수가 인과관계를 가지려면 두 변수 간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둘째, 인과관계라는 말에는 시간적 순서성이 내포된다.즉 원인의 변화가 먼저 발생해서, 결과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다시 말해 상관관계를 구성하는 두 변수 중 무엇이 원인이고 ..

밀양 봄: 위로하기는 어려워

영화는 전반적으로 불행하고 불쾌했다. 주인공은 불행한데 자꾸 불행해지기만 하고 주변에서는 오만하게 위로하는 이들뿐이라서 불쾌했다.위로한다는 것. 어떤 위로는 나를 존중하려는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져 울컥하게 만든다. 또 어떤 위로들은 니가 뭘 안다고? 반문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 인간을 용서할 수 있어요?"상처는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쉽게 도움받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 나 대신 판단을 내려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존심의 문제인 것 같지만 또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상처는 대개 존엄성에 관한 것들이다. 다 안다는 듯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태도는 이미 존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