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잔 가설(Rajan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불평등이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다소 검증하기 어려운 가설이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이 자신의 책 Fault Line에서 제시한 주장에서 연유했다. 그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경제에서, 저소득층은 인적자본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저소득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재정정책을 사용하거나 구조적인 문제 해결로 접근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대신 완화적 금융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증가시키며 이것이 금융위기의 배경을 형성한다.
"Growing income inequality in the United States stemming from unequal access to quality education led to political pressure for more housing credit. This pressure created a serious fault line that distorted lending in the financial sector. Broadening access to housing loans and home ownership was an easy, popular, and quick way to address perceptions of inequality. Politicians set about achieving it through the agencies and departments they had set up to deal with the housing-debt disasters during the Great Depression. Ironically, the same organizations may have helped precipitate the ongoing housing catastrophe. (...) Some support to low-income housing might have had benefits and prompted little private-sector reaction. But support at a scale that distorted housing prices and private-sector incentives was too much. Furthermore, the private sector ’s objectives are not the government’s objectives, and all too often policies are set without taking this disparity into account. Serious unintended consequences can result." (Rajan, 2010)
라잔은 소득불평등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대응이라는 정치경제적 메커니즘으로 소득불평등-금융위기 가설의 이론적 경로를 상정하였다. 보다 거시경제적인 접근은 이번에 소개할 Kumhof et al.(2015)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의 공통점은 위기 발발 이전 몇십년 간 소득불평등과 부채비율의 급격한 증가가 선행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대침체와 대공황이 발발하기 이전 시기의 가계 부채 비율과 상위 5%의 소득 비중의 증가를 보여준다. 대침체의 경우 1983년과 2008년 사이에 상위 5%의 소득 비중은 21.8%에서 33.8%로 증가했고 가계 부채 비율은 49.1%에서 98%로 거의 두 배가 되었다.
부채의 증가는 주로 저소득계층에서 발생했다. 소득수준 상위 5%와 하위 95%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의 변화를 살펴보면 대침체와 대공황 모두에서 해당 패턴이 발견된다. 대침체의 경우 하위 95%에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983년에 60% 남짓에서 대침체 직전 150%까지 증가했다. 반면 상위 5%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80%에서 60% 수준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경제 전체의 부채 비율 증가는 하위 95%에 의해 발생하였다.
소득불평등의 증가와 저소득계층의 부채 증가는 금융위기 가능성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들은 이러한 직관을 반영한 거시경제모델을 구성하였다. 경제 전체를 소득 상위 5%와 하위 95%의 두 계층으로 분할하고, 전자가 후자에게 대부를 제공하는 경제를 상상하자. 이때 고소득계층은 현재의 소비와, 저소득계층에게 대부해 얻은 금융자산의 크기의 정의 함수인 효용함수를 극대화하며 이에 따라 저축(즉 대부) 의사결정을 내린다. 저소득계층은 자신의 소득과 고소득계층으로부터 얻은 대부자금으로 소비지출을 한다.
이때 저소득계층은 차입한 자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할 것인지, 파산할 것인지 선택하는 합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정상적으로 상환하기를 선택할 경우(상환금을 지출)의 평생 소비의 할인 가치와 파산할 경우 페널티가 부과되어 감소된 평생 소비의 할인 가치를 비교하여 후자가 더 클 경우 파산(금융위기로 이어지는)을 선택한다. 파산의 확률과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정의 관계를 갖는데, 파산의 이득(상환금의 감소)이 커지기 때문이다.
수식은 생략하고, 이러한 모형 하에서 상위 5% 계층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표준편차 증가할 시 변화를 관측하였다. 상위 5% 계층은 소득 증가를 경험하지만 이를 모두 소비지출에 사용하기보다는 저축을 늘리기를 선호한다. 따라서 경제 전체의 신용공급이 증가하고 실질이자율은 하락한다. 이는 하위 95% 계층의 차입을 증가시키므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위기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요컨대 소득불평등 증가는 고소득계층의 저축을 증가시키고 이는 저소득계층의 차입 증가를 의미한다. 저소득계층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 증가는 금융위기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소득불평등이 경제의 성장잠재력 내지는 거시경제의 안정성에 미치는 하나의 경로를 시사한다.
Michel KumHof · Romain · Ranciere · Pablo Winant, "Inequality, Leverage, and Crises", American Economic Review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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